자크 라깡 2편 – 욕망 이론을 가장 쉽게 정리한 글

라깡의 욕망 이론을 중심으로 타인의 욕망이 나를 어떻게 움직이는지, 결핍과 욕망의 구조를 탐구하며 ‘진짜 나의 욕망’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라깡의 욕망 이론(desire theory)이란?

20세기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Jacques Lacan)은 인간의 욕망이 단순히 무언가를 ‘갖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복잡하고 근본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라캉의 욕망 이론이다.
그의 욕망 이론 핵심 명제중 하나는 이것이다.

“욕망은 결핍에서 비롯된다.”
(Le désir naît du manque.)

여기서 말하는 ‘결핍(manque)’은 단순히 어떤 것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인간 존재의 구조적 불완전함이다.
구조적인 불완전함이라…
라깡은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언제나 충만하지 못하고, 뭔가 빠져 있는 상태라고 말한다.
이 ‘빠진 것’이 바로 욕망의 근원이 되는 된다.
우리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채로 살아가고, 그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바로 욕망이다.

라깡은 욕망의 구조를 다음 세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 욕구(Need) : 생물학적 욕구 (예: 배고픔, 수면)
  • 요구(Demand) : 언어를 통해 표현된 필요 (예: “엄마, 밥 줘”)
  • 욕망(Desire) : 요구의 이면에 있는 것. 말로 표현될 수 없고, 항상 다른 것으로 대체되며, 결코 완전히 충족되지 않는 것.

욕구는 욕구는 가장 기본적인 생물학적 필요를 말한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고,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는 것이다.
이는 동물도 갖고 있는 본능적 욕구다.


요구는 욕구가 언어로 표현될 때 나타난다.
즉, 내가 배가 고파서 밥을 달라고 할 때, 표면적 요구는 밥이지만,
사실은 “엄마의 사랑”이나 “돌봄” 같은 근본적 욕망이 숨어 있는 거다.
이처럼 요구는 항상 타인에게 향하며, 그 안에는 사랑에 대한 갈망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마지막의 욕망은 무엇인가?
라캉에 따르면 욕망은 욕구에서 요구를 뺀 나머지다.
즉, 욕망 = 욕구 – 요구의 공식이 성립한다.
더 쉽게 말하면, 우리가 무언가를 얻었을 때도 여전히 남아있는 불만족감이 바로 욕망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도, 좋은 직장을 얻어도 어딘가 허전함이 남는다.
이 허전함이 바로 욕망의 정체다.
자 이제 욕구, 요구, 욕망 세가지의 개념 정리가 되었는가?

그래서 라깡은 그 유명한 말을 남긴다.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
(Le désir est le désir de l’Autre.)

우리는 종종 타자가 나에게서 무엇을 원하는지를 욕망한다.
즉,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나 사회, 혹은 어떤 ‘타자’가 기대하는 모습을 나의 욕망인 줄 알고 살아가는 거다.

그 기대를 따르며 살아가다 보면,
내 욕망인지, 타인의 시선 속에 만들어진 욕망인지 헷갈리는 순간이 찾아온다.
마치 남이 정해준 인생의 대본을 내가 스스로 쓴 줄 알고 연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돌아보면 나 역시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누군가의 기대 그대로를 나의 바람으로 착각한 채, 달려왔던 시간들…


대상 소문자 a란 무엇인가?

실루엣 인간 머리에 '대상 a'가 투입되는 장면과 라캉의 욕망 이론(desire-theory) 관련 수식이 함께 구성된 철학적 개념 이미지
자크 라캉의 ‘욕망 이론’과 대상 a 개념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이미지

라깡의 욕망이론에서 핵심 중의 핵심 개념이 바로 대상 소문자 a (objet petit a) 다.
이건 우리가 욕망하는 ‘대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결핍의 상징이다.

어떤 사람이 끊임없이 칭찬받고, 인정받고, 박수 받기를 욕망한다고 해보자.
겉으로는 “성공”, “인정”, “명예”를 욕망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던 결핍이 욕망의 뿌리일 수 있다.
이때 ‘대상 a’는 완전한 인정감인데, 현실에서 그건 결코 완전하게 채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 사람은 계속 더 높은 자리, 더 큰 박수, 더 많은 팔로워를 찾아 나서게 되는 것 이다.

이걸 쉽게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내용요약
욕망의 기원결핍(manque)에서 비롯됨
욕망의 구조필요 → 요구 → 욕망
욕망이란타자의 욕망을 따라 형성됨
충족 여부결코 충족되지 않고 계속됨
핵심 개념대상 a: 결핍의 상징, 도달 불가능한 것

대상 소문자 a는 겉으로는 욕망의 대상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욕망을 끌어내는 결핍의 흔적, 부족함의 상징이다.

우리가 그것을 진짜로 원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구체적인 현실의 무언가가 아니라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결핍, 즉 마음속 환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늘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그 결핍을 채워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막상 그것을 얻고 나면, 그 욕망은 금세 시들고,
다른 결핍이 다시 고개를 들며 새로운 욕망을 만들어낸다.
다들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욕망 이론 속 타자의 욕망 구조

라깡이 말한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라는 문장은 쉽게 흘려들을 수 없을 만큼 깊이가 있다.
이 말은 단순히 누군가가 원하는 것을 ‘나도 갖고 싶어진다’는 의미를 넘어서,
‘타자가 나에게서 원하는 것을 내가 욕망하게 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종종 사회가 기대하는 삶, 타인이 부러워할 만한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그것이 정말 나의 욕망인지 아닌지에 대한 물음은 쉽게 묻혀버린다.
이런 구조 속에서 우리는 나의 진짜 욕망이 아니라,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라깡은 인간이 타자의 시선을 통해 자기를 인식하고, 그 시선 안에서 욕망을 구조화한다고 보았다.
그렇기에 나의 욕망은 언제나 완전히 ‘나의 것’일 수 없다.
신기한 말이지 않은가?
나의 욕망이 나의 것이 아니라니, 그러나 이해가 안될 것 도 없다.


욕망은 왜 계속되는가?

라깡의 욕망 이론에서 중요한 또 하나는 바로
욕망은 결코 충족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욕망은 충족을 향해 움직이지만, 그 자체로는 절대 완전한 만족에 도달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욕망은 언제나 결핍에서 비롯된 환상을 향해 달려가기 때문이다.
그 환상은 ‘만약 저것만 손에 넣는다면 나는 완전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포장되어 있다.
하지만 막상 손에 넣고 나면, 그 만족감은 금세 휘발되고
또 다른 결핍이 등장하며, 우리는 새로운 욕망을 따라 다시 움직인다.

이처럼 욕망은 연속적인 구조다.
대상 a는 항상 결핍을 충족시켜줄 것 같은 환상적인 대상처럼 나타나지만,
그 어떤 대상도 우리를 완전히 채워주지 못한다.
그렇기에 욕망은 계속 이어지고, 인간은 그 구조 안에서 살아가게 된다.


나의 욕망을 다시 바라보기

타자의 욕망이 나를 움직인다.
<타자의 욕망이 나를 움직인다>
우리는 종종 ‘욕망은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욕망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하지만 그 욕망이 타자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인지,
혹은 내가 무의식적으로 투사한 결핍을 따라가는 것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라깡의 욕망 이론은 삶을 회의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욕망하는 것이 진짜 ‘나의 것’인지 묻는 성찰의 기회를 준다.
나는 지금 무엇을 욕망하고 있는가?
그것은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기대인가?


내가 욕망하는 것이 진짜 ‘나의 것’일까?

라깡의 욕망 이론을 공부하면서 가장 많이 떠오른 질문은 이거였다.
“나는 정말로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한때 성공이라는 단어에 집착했던 적이 있다.
직장에서의 성과, SNS에서의 반응, 주변의 인정…
그 모든 것이 내 욕망이라고 믿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건 내가 바랐던 것이 아니라 ‘타자가 나에게서 바라던 것’일 가능성이 더 크다.

어릴 적 부모님의 기대, 사회의 기준, 이상적인 롤모델…
그 모든 것이 하나의 ‘타자’가 되었고,
나는 그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며 살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쥐고 있는 이 욕망이 진짜 나의 것인지 되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질문은 꽤나 불편하지만, 동시에 나를 깊이 들여다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욕망을 성찰하는 삶

라깡은 인간이 타자의 시선 속에서 욕망을 형성한다고 말했다.
욕망은 언제나 결핍에서 비롯되며, 결코 충족되지 않는 구조를 가진다.
그래서 욕망은 삶을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자,
동시에 끊임없이 흔들리게 만드는 모순된 에너지다.

나는 이 이론을 단순히 철학적인 명제나 심리학적 해석으로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그보다는 내 삶에 직접 적용해보려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나는 왜 이걸 하고 싶은가?”를 자주 묻는다.
그 질문의 바닥에는 종종 ‘누군가의 인정을 받고 싶어서’라는 대답이 숨어 있다.
그걸 인식하게 되면, 행동의 동기가 바뀔 수 도 있다.
욕망의 방향이 나의 무의식에서 타자의 시선으로 옮겨졌던 것을 되돌릴 수 있는 가능성도 생긴다.


욕망을 도구로 쓰는 법

나는 이제 욕망을 없애거나 억제하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욕망을 이해하고, 그것을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쓰는 방법을 고민한다.

욕망은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는 힘이다.
하지만 그 힘이 나를 나답지 않게 만든다면, 잠시 멈춰야 한다.
라깡의 이론은 그런 ‘멈춤’을 가능하게 해준다.

욕망은 계속된다.
대상 a는 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등장할 것이고,
나는 또다시 그것을 좇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그 욕망의 배경에 ‘결핍’이 있다는 걸 안다.
그리고 그 결핍이 타자의 욕망일 가능성도 있다는 걸 안다.

이제 나는 욕망을 선택적으로 믿는다.
어떤 욕망은 나를 성장하게 하고,
어떤 욕망은 나를 소모시킨다.
중요한 건, 그것이 나의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수 있는 눈이다.


PS : $\mathbb{R}$, $\mathbb{I}$, $\mathbb{S}$, $\bar{S}$, $a$ (object petit a), $\partial$ (∂), $S(A)$, $$ \rightarrow a$
아마, 처음보는 사람들은 이게 뭐지 할 것이다.
라캉(Jacques Lacan)이 썼던 기호들은 꽤 독특하고 철학적, 수학적 상징으로 구성돼 있어서 초심자 입장에서는 꽤 헷갈릴 수 있다.
하지만 한 번 패턴을 익히면 라캉의 사고구조 자체를 읽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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