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심리란? – 마음과 영혼이 만나는 지점?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며 문득 이런 질문을 떠올린다.
“나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 “지금의 고통은 어디서 오는 걸까?”, “내 삶에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이런 물음은 단순한 심리적 증상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본을 향한 내면의 부름일지도 모른다. 전통적인 심리학은 이러한 질문에 명확한 답을 주지 못했지만, 영성심리는 그 물음에 다가갈 수 있는 또 다른 통로를 제시한다. 이 글에서는 영성심리가 어떻게 탄생했고, 기존 심리학과 어떤 점에서 다른지, 그리고 우리 삶에 어떤 치유와 통찰을 줄 수 있는지를 천천히 짚어보고자 한다.

영성심리의 개념과 정의

20세기 후반 서구 사회에서 전통적인 심리학의 한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시작되었다. 기존의 과학적, 실증적 접근법만으로는 인간 존재의 깊은 차원을 충분히 다룰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실존적 고민, 삶의 의미 추구, 초월적 경험 등은 전통 심리학의 틀 안에서 제대로 설명되거나 다뤄지지 못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에서 새로운 접근법이 탄생하게 되었다.

1960년대 인본주의 심리학의 영향 아래, 아브라함 매슬로는 자아실현을 넘어선 ‘자기초월’의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심리학 제4의 힘으로서 초개인심리학을 주창하며, 인간의 영적 차원을 학문적으로 탐구할 토대를 마련했다. 이 시기에 동양의 명상 전통과 서구 심리치료의 만남도 활발해졌다. 불교 철학, 힌두 사상, 수피즘(이슬람 신비주의) 등 다양한 영성 전통의 지혜가 현대 정신의학과 통합되기 시작한 것이다.

칼 융의 분석심리학은 이 분야의 기초를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집단무의식’, ‘개성화’, ‘종교적 체험’ 같은 개념을 통해 심리학이 단순한 과학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성과도 깊이 연결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융은 정신 건강이란 단순히 병적인 증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삶의 더 깊은 의미를 찾고, 때로는 영적인 체험을 통해 자기 자신이 더 넓고 깊은 존재로 변화해 가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즉, 그는 진정한 치유란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전체가 변화하고 성장하는 경험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기존의 심리학은 주로 병리학적 관점을 취해왔다. 정신적 질병이나 문제 행동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반면 이 영성심리학 접근법은 인간을 본래 건강하고 완전한 존재로 보며, 그 잠재력을 실현하고 성장시키는 데 관심을 둔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개인의 내재된 지혜와 치유 능력을 활성화하는 것을 중시한다.

기존 이론이 개인의 자아와 의식 영역에만 집중한다면, 이 새로운 관점은 자아를 초월한 영역까지 탐구 범위에 포함한다. 여기에는 직관적 통찰, 신비적 경험, 우주적 의식, 내면적 각성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경험들을 병리적 현상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인간 성장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이해한다.

또한 전통 이론이 과학적 객관성을 강조한다면, 통합적 접근법은 주관적 경험의 가치를 인정한다. 개인의 내면적 체험, 직관, 영감을 중요한 정보원으로 받아들인다. 동시에 이성적 분석과 직관적 통찰을 균형 있게 결합하려 노력한다.

치료 목표 면에서도 차이가 있다. 기존 심리치료가 증상 완화나 적응 능력 향상을 목표로 한다면, 통합적 접근법인 영성심리는 자기실현, 의미 발견, 내면적 성숙을 궁극적 목표로 삼는다. 단순히 정상적인 기능을 회복하는 것을 넘어, 개인의 가장 깊은 잠재력을 실현하고 삶의 참된 목적을 찾도록 돕는다.

특히 이 관점에서는 ‘마음’과 ‘영혼’ 사이의 경계를 탐색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마음은 감정과 사고를 포함한 의식 차원을, 영혼은 그보다 더 깊고 본질적인 존재의 중심을 가리킨다. 과거 서구에서는 이를 분리된 개념으로 봤지만, 이제는 분리 불가능한 하나의 통합된 흐름으로 인식되고 있다. 바로 이러한 통합적 시각이 영성심리라는 분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내면의 문제는 단순히 뇌의 화학적 불균형이나 학습된 부적응 패턴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깊은 내면의 갈망, 삶의 의미에 대한 추구, 초월에 대한 욕구가 좌절되거나 왜곡될 때 각종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진정한 치유는 표면적 차원뿐만 아니라 가장 깊은 내면에서도 일어나야 한다.

통합적 관점의 영성심리에서는 의식의 다층적 구조를 인정한다. 프로이드의 의식, 전의식, 무의식 구분을 넘어서, 개인무의식, 집단무의식, 그리고 우주적 의식이나 초월적 차원까지 포함한다. 개인의 성장 과정은 이러한 의식의 여러 층위를 통합하고 확장해가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또한 선형적 시간 개념을 넘어선 관점을 제시 하고있다. 이 말은 시간에 대한 생각, 즉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흐른다’는 일직선적인 관점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의 현재 경험이 과거의 기억이나 미래의 가능성과 동시에 연결되어 있으며, 때로는 개인을 초월한 집단적, 우주적 차원의 영향을 받는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은 치유와 성장에 대해 보다 포괄적이고 깊이 있는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결국 이러한 접근은 인간을 몸, 마음, 그리고 영혼이 조화를 이루는 전체적 존재로 바라본다. 세 차원이 균형 있게 발달할 때, 비로소 진정한 건강과 행복이 가능해진다. 이것은 단순한 신비주의가 아니라, 영성심리가 추구하는 인간 존재에 대한 확장된 탐구이며, 과학과 직관이 만나는 지점이다.


황금빛 자연 속에서 단발머리 여성이 명상하는 옆모습 유화 그림. 왼쪽에는 영성심리의 개념과 정의, 핵심원리, 주요 영역, 실제 적용, 현대사회에서의 의미라는 다섯 가지 주제가 한글로 정리되어 있다
영성심리에 대한 글의 핵심주제

영성심리의 핵심 원리

영성심리가 다루는 핵심 원리는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인간은 심리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영적 존재이다. 우리는 마음을 가진 존재이지만, 단지 생각하고 느끼는 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삶의 의미를 찾고, 자신을 넘어서 더 큰 무언가와 연결되고 싶어 한다. 기쁘고 슬픈 감정을 느끼는 동시에, “왜 살아야 할까” 같은 질문도 품는다. 이처럼 인간은 깊은 영혼과 초월을 향한 갈망을 가진 존재다.
따라서 진정한 치유와 성장은 마음뿐 아니라 영혼의 차원까지 바라봐야 가능하다.

둘째, 고통은 성숙과 성장의 기회이다.
고통은 마치 땅속 어둠을 뚫고 나오는 씨앗과도 같다. 겉으로는 아프고 힘든 순간처럼 보여도, 그 안에는 내면의 성숙과 변화를 위한 씨앗이 자라고 있다. 영성심리에서는 이런 고통을 단순한 문제로 보지 않고, 영혼이 성장하려는 신호로 이해한다. 상실, 외로움, 불안 같은 감정들은 나를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깊은 나 자신을 만나게 하려는 길잡이다. 그래서 영성심리는 말한다 — 고통은 끝이 아니라, 진짜 나를 향해 걸어가는 시작이라고. (그렇다면 고통은 삶에 있어서 필요악인가? 그렇지 않으나 설명이 길어지니 패스!)

셋째, 내적 자원과 초월적 차원의 연결이 치유를 가능하게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안에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영성심리는 밖에서 무언가를 바꾸기보다는,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자원과 연결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명상이나 기도, 조용한 성찰 같은 영적 실천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이런 과정 속에서 마음이 차분해지고,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힘이 자라난다. 결국 영성심리는 치유의 열쇠가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넷째, 삶의 의미와 목적은 심리적 건강의 핵심 요소이다.
단순히 우울하거나 불안하지 않다고 해서, 건강한 건 아니다. 자신의 삶에 의미가 있다고 느끼고, 왜 살아가는지를 스스로 이해할 때 비로소 마음도 편안해진다. 영성심리는 이런 점에 주목한다. 삶을 나 혼자만의 여정이 아니라, 더 큰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과정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만의 고유한 목적과 방향을 찾도록 돕는다.

요약하자면, 영성심리의 핵심 원리는 인간을 영적·심리적 통합체로 이해하고, 고통을 성장의 과정으로 보며, 내적 자원과 초월적 차원의 연결을 통해 치유와 의미를 발견하게 한다는 데 있다. 이러한 원리는 단순한 이론적 개념을 넘어 실제 상담, 교육, 자기 성찰의 현장에서 중요한 지침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영성심리가 다루는 주요 영역

많은 사람들이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왜 살아야 하지?”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성공적인 직장 생활을 하고 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딱히 부족한 것이 없는데도 마음 한구석에서 공허함이 밀려온다. 이런 실존적 공허감은 현대인들이 가장 흔히 경험하는 고통 중 하나다.

전통적인 상담에서는 이런 문제를 우울증이나 적응 장애로 진단하고 약물 치료나 인지 행동 치료를 제안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런 접근법도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 공허감의 뿌리는 더 깊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삶이 의미 있기를 바란다.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만의 고유한 목적과 가치를 실현하며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외적 성취와 물질적 만족에만 거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내면의 가장 깊은 갈망은 무시되거나 억압된다. 이때 나타나는 것이 바로, 실존적 공허감이다.

통합적 접근법인 영성심리에서는 이런 경험을 병리적 증상이 아니라 ‘영혼의 부름’으로 이해한다. 더 깊고 의미 있는 삶을 살라는 내면의 신호로 본다는 것이다. 이 신호에 귀 기울이고 자신만의 진정한 목적을 찾아가는 과정이 곧 치유가 된다.

어떤 사람은 예술을 통해, 어떤 사람은 다른 이들을 돕는 일을 통해, 또 어떤 사람은 자연과의 깊은 교감을 통해 자신의 의미를 발견한다. 중요한 것은, 남들이 정해놓은 성공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목적을 찾는 것이다.

트라우마 치유에서도 영적 차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단순히 과거의 기억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는 완전히 회복되기 어렵다. 상처받은 마음뿐만 아니라 영혼까지도 치유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학대를 받은 사람이 있다고 하자. 전통적인 치료에서는 그 경험이 현재 삶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부정적인 사고 패턴을 바꾸거나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운다. 이런 접근도 물론 도움이 된다. 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경험을 통해 얻은 깊은 지혜와 연민의 능력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 통합적 접근법의 특징이다.

상처받은 경험이 단순히 제거되어야 할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과 타인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통찰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이다. 이런 의미 발견 과정을 통해 피해자에서 생존자로, 그리고 나아가 치유자의 역할까지 할 수 있게 된다.

죽음과 상실에 대한 이해도 영성심리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주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자신의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사람들은 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들과 마주하게 된다. 기존의 심리학적 접근만으로는 이런 깊은 고통과 두려움을 충분히 다루기 어렵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변화의 과정이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물론 이것이 특정 종교적 믿음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 너머에 있는 더 큰 차원의 존재를 탐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임종을 앞둔 많은 사람들이 놀라운 평안과 지혜를 경험한다는 보고들이 있다. 일생 동안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는 깨달음, 사랑과 용서의 힘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일체감 등이다. 이런 경험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마지막 순간까지 평화롭게 떠날 수 있는 내적 준비를 가능하게 한다.

사별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보자. 슬픔과 그리움을 억압하지 않으면서도, 고인과의 영적인 연결감을 통해 위로와 힘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많은 사람들이 꿈이나 명상 중에, 또는 일상의 특별한 순간에 돌아가신 분과의 교감을 경험한다. 이런 체험을 환상이나 착각으로 치부하지 않고, 치유의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관계에서의 영적 성장도 빼놓을 수 없는 영역이다.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나 어려움을 단순히 소통 문제나 성격 차이로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를 통해 자신의 그림자를 마주하고, 더 성숙한 존재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부부 관계에서 자주 일어나는 갈등을 예로 들어보자. 서로의 다른 점 때문에 다투고 상처를 주고받는다. 전통적인 부부 상담에서는 소통 기술을 배우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타협점을 찾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더 깊은 차원에서 보면, 상대방이야말로 자신이 가장 성장이 필요한 부분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상대방의 어떤 행동이 나를 화나게 만든다면, 그것은 내 안의 어떤 미해결된 감정이나 믿음과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깨달아가는 과정 자체가 관계를 통한 영적 성장이다.

이런 관점에서 갈등은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성장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된다. 물론 이 과정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이를 통해 형성되는 관계는 단순한 편안함을 넘어서는 진정한 친밀감과 영적 연결을 가져다준다.


영성심리의 실제 적용

상담심리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흥미롭게 다가오는 부분이 바로 실제 적용 영역이다. 이론으로만 배우던 것들이 어떻게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는지 궁금했다. 특히 통합적 접근법인 영성심리는 전통적인 상담 기법들과는 다른 차원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불안 장애를 가진 내담자가 있다고 하자. 여러 병원을 다녀보고 약물 치료도 받았지만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전통적인 접근에서는 주로 인지적 재구성이나 행동 수정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통합적 관점에서는 여기에 더해 몸의 감각과 호흡, 그리고 내면의 더 깊은 차원까지 탐구한다.

“머리로는 다 아는데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호소를 자주 듣게 된다고 한다. 바로 이런 순간에 명상이나 마음챙김 기법이 유용하다. 눈을 감고 지금 이 순간의 몸 감각에 집중하면서, 말로 표현되지 않던 감정의 실체와 마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명상이나 마음챙김을 치료에 활용하는 연구들을 살펴보면 정말 흥미로운 결과들이 나온다. 단순히 기법으로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가 자신의 내면과 진정으로 만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런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통찰과 치유의 순간들이 실제 변화를 가져온다고 한다.

상담 사례집을 읽어보면, 명상 중에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오르는 경우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오랫동안 억압되어 있던 감정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표면으로 올라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기억들과 건강한 방식으로 재연결되는 것이다. 성인이 된 현재의 자신이 과거의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보듬어주는 과정이 치유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기도의 치료적 효과에 대한 연구들도 주목할 만하다. 여기서 말하는 기도는 특정 종교의 형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보다 큰 존재나 더 큰 사랑과 지혜에 자신을 맡기는 마음가짐을 의미한다. 중독 치료에서 이런 ‘항복’의 개념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예술을 통한 치유 방법들도 정말 매력적이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깊은 감정들이 그림이나 조각, 음악을 통해서는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 있다. 특히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효과적이라고 한다. 언어 중심의 좌뇌적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있지만, 예술적 표현을 통해서는 우뇌의 직관적이고 감정적인 영역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적인 작품의 변화가 내적 상태의 변화를 반영하기도 하고, 때로는 오히려 작품을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내면의 변화가 일어나기도 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마지막으로, 자연과의 만남을 치유의 과정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점점 더 주목받고 있음을 이야기 해본다. 도시의 소음과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자연은 일종의 ‘회복의 공간’이 된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산림치유나 원예치료 같은 자연 기반 치료법들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이런 흐름은 TV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에서도 잘 드러난다. 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단순한 생존 그 이상으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자기 자신을 회복해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나무를 바라보고, 새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흙을 만지는 그들의 일상은 복잡한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본질에 집중하게 해준다. 그런 일상의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우리도 “치유란 꼭 병원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구나”라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현대사회에서 영성심리의 의미

요즘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다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뭔가 채워지지 않는 느낌”, “성공했는데도 공허한 마음”, “인생이 의미 있는 건가?” 같은 이야기들이다. 겉보기에는 모든 것이 풍족한 시대에 살고 있는데, 왜 이런 내면적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걸까.

물질문명이 발달하면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얻었다. 스마트폰 하나로 전 세계와 소통할 수 있고, 원하는 정보를 즉시 찾을 수 있다. 온라인 쇼핑으로 필요한 물건은 다음 날 바로 받아볼 수 있다. 의료 기술의 발달로 평균 수명도 크게 늘어났다. 분명 편리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자신의 내면과 마주할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깊은 관계보다는 표면적인 소통이 늘어났다. SNS에서는 완벽해 보이는 다른 사람들의 삶과 자신을 비교하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특히 코로나19를 경험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실존적 질문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멈춰선 일상 속에서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들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질문들은 기존의 상담 접근법만으로는 충분히 다뤄지기 어렵다.

디지털 시대가 가져온 또 다른 변화는 정보의 과부하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뉴스를 접하고, 끝없는 영상 콘텐츠들을 소비한다. 머리는 계속 자극을 받지만, 정작 마음은 메말라가는 느낌이다. 집중력은 떨어지고, 깊이 생각할 시간은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내면의 평안과 고요를 찾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한다.

현대인들이 겪는 정신건강 문제들도 예전과는 양상이 다르다. 단순한 우울이나 불안을 넘어서, 삶의 무의미함, 관계의 단절감, 정체성의 혼란 같은 실존적 차원의 어려움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증상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통합적 관점이 주목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인들의 영적 갈증을 단순히 종교적 문제로만 치부하지 않고, 인간의 보편적 욕구로 인정하고 다루려는 것이다. 종교를 가진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보다 큰 무언가와 연결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욕구다.

요즘 명상이나 마음챙김이 인기를 끄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종교적 색채를 배제한 채로도 내면의 평안과 깊은 통찰을 경험할 수 있는 방법들이 주목받고 있다. 기업에서도 직원들의 스트레스 관리와 창의성 증진을 위해 명상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기법만 배우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왜 이런 접근이 필요한지, 어떤 철학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야 피상적인 유행을 넘어서 진정한 도움이 될 수 있다.

미래의 심리학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야 할까. 개인적으로는 더욱 통합적이고 전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구의 과학적 방법론과 동양의 지혜 전통이 만나고, 개인의 치유와 사회적 변화가 연결되는 그런 접근 말이다.

특히 환경 문제, 사회적 불평등, 정치적 갈등 같은 거시적 문제들이 개인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더 깊이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개인의 고통이 단순히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아픔과 연결되어 있다는 관점이 필요하다.

또한 인공지능과 로봇이 발달하면서 “인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도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기계가 할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것이 심리학의 새로운 과제가 될 것 같다. 창의성, 직관, 사랑, 연민 같은 영역들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상담심리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런 변화의 흐름을 잘 이해하고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이론과 기법들을 탄탄히 익히는 동시에, 새로운 접근법들에도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내면 성장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현실은 4차원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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