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 사자의 서』에 담긴 죽음의 상징을 칼 융은 어떻게 해석했을까?
구스타프 칼 융을 눈을 통해 책 티벳 사자의 서를 읽는 대신 알아가본다.
목차

칼 융과 『티벳 사자의 서』의 심리학적 조우
칼 구스타프 융은 단순한 심리학자라기보다, 인간 정신의 미지의 영역을 탐험한 ‘내면의 탐험가’였다. 그는 무의식의 구조를 분석하면서 집단 무의식, 아니마와 아니무스, 그림자와 같은 개념들을 통해 인간 존재의 깊이를 조명해왔다.
칼융은 특히 신화, 종교, 연금술, 그리고 동양 사상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그것들이 서양 심리학에서 다루지 못하는 ‘상징’과 ‘의미’의 세계를 보여준다고 믿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융이 『티벳 사자의 서』에 매료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티벳 사자의 서』, 혹은 Bardo Thödol은 티벳 불교의 사후 세계관과 의식을 다룬 책으로, 죽음과 환생의 경계를 상세히 묘사하며, 인간 정신이 죽음 이후 어떤 여정을 겪는지를 이야기한다. 융은 이 책의 상징적 구조와 의식의 변화 과정이, 자신이 탐구해온 무의식의 단계적 통과 과정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 책을 단순한 종교 문헌이 아닌, 인간 심리의 가장 근본적인 층위를 드러내는 심리학적 지도로 받아들였다.
실제로 그는 『티벳 사자의 서』가 설명하는 바르도(Bardo)의 세계를 무의식 속 ‘과도기적 상태’로 해석했고, 이는 이후 융 심리학에서 꿈, 환상, 죽음과 재탄생의 주제를 분석하는 중요한 틀로 자리 잡게된다.
융이 직접 이 책의 영문 번역판에 ‘심리학적 해설(Psychological Commentary)’을 기고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이 글에서 티벳의 죽음 의식이 현대 서구인들이 억압하고 있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무지를 마주하게 해준다고 평가하며, 이 책이 심리적·영적 도구로서 지닌 가치를 강조했다.
융에게 있어 이 책은 단지 동양의 신비로운 문헌이 아니라, 자기 탐색과 통합을 위한 거울이자 안내서였던 셈이다.
『티벳 사자의 서』: 죽음에서 삶으로 이어지는 영혼의 여정
『티벳 사자의 서』(Bardo Thödol)는 티벳 불교의 핵심 경전으로, 단순한 사후 세계 안내서를 넘어 죽음을 통해 삶을 성찰하게 만드는 영적 지침서다.
이 책은 죽음이라는 문턱을 넘은 후, 영혼이 49일간 경험하는 ‘바르도(Bardo)’라는 중간계를 상세하게 묘사한다.
한국의 49제 개념과는 다르다.
이 바르도는 빛, 소리, 환영, 그리고 자신의 업(業)으로부터 비롯된 다양한 심리적 투사들이 나타나는 깊은 내면의 무대이기도 하다.
이 경전은 단지 죽은 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며, 산 자 또한 죽음이라는 극단적 상황을 통해 자신의 의식 상태를 돌아보고, 깨어남에 이를 수 있다는 티벳 불교의 통찰이 이 책에 녹아 있다. 실제로 티벳의 장례 문화에서는, 이 경전을 낭송하며 죽은 자의 영혼이 집착과 공포를 내려놓고, 고통스러운 윤회의 반복이 아닌 해탈의 길을 택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 의미에서 『티벳 사자의 서』는 ‘영혼의 내비게이션’이자 ‘의식의 지도’라 할 수 있겠다.
칼 융이 이 책에 깊이 매료된 것도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그는 『티벳 사자의 서』에서 묘사하는 빛의 현상, 환영의 신들, 무시무시한 형상들을 심리적 상징으로 해석했다. 융은 바르도 상태를 인간이 삶 속에서 경험하는 무의식의 위기—예를 들어 우울, 트라우마, 영적 혼란 등과 유사하다고 보았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현상들은 외부 세계의 실체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투사된 심리적 이미지들이며, 이를 직면하고 수용하는 것이 곧 해탈(또는 자기통합)의 열쇠라고 본 것이다.
또한, 융은 『티벳 사자의 서』가 단지 티벳 불교의 종교적 교리를 담은 것이 아니라,
인간 의식이 변화하는 보편적 구조를 드러내는 ‘심리적 지도’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이 책이 죽음을 통한 의식의 진화, 혹은 ‘자기의 실현(Self-realization)’이라는 심리학적 주제와 깊이 연결된다고 보았다.
티벳의 죽음 의례는 단지 고인을 위로하는 문화적 행위가 아니라, 삶과 죽음을 초월한 자기 탐색의 여정이라는 점에서, 융의 작업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융, 동양의 지혜에 매료되다
『티벳 사자의 서』는 1927년, 영국의 학자 월터 에반스-웬츠(Walter Evans-Wentz)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면서 처음 서양 세계에 소개되었다.
에반스-웬츠는 이 고대 경전이 단지 동양의 신비한 문서가 아니라,
죽음과 삶의 본질에 대한 보편적 통찰을 담고 있다고 보았고, 그 가치를 서양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그는 이 책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칼 구스타프 융에게 ‘심리학적 해설’을 의뢰했고,
앞서 설명했듯이 융은 이 요청을 흔쾌히 수락했다. 융은 『티벳 사자의 서』를 처음 접했을 때, 그 안에 담긴 상징 체계와 죽음 이후의 심리적 과정을 단순한 종교적 해석이 아닌,
무의식의 보편적 구조를 상징적으로 서술한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동양적 영적 문서인 동시에, 인간 내면의 본질을 드러내는 심리학적 고전이라고 볼 수 있다.
융은 특히 이 책이 묘사하는 ‘바르도’ 상태—죽음과 환생 사이의 중간 영역—를,
인간이 정신적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겪는 심리적 해체와 재구성의 과정과 평행선상에 두었다. 그는 바르도에 나타나는 무수한 신과 마왕, 빛과 그림자의 형상들을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상징적 이미지들로 해석했다.
이러한 해석은 융이 주창한 개성화 과정(Individuation)—즉, 자아와 무의식이 통합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데 있어 강력한 상징적 도구로 작용했다.
‘심리학적 해설’에서 융은 이 책이 서양 독자들에게 다소 낯설고 이질적으로 보일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상징과 구조가 놀랄 만큼 현대 심리학과 유사한 통찰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티벳 사자의 서』를 통해 동양의 사유가 서양 심리학과 어떻게 공명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고, 이 작업을 계기로 동서양의 지혜가 만나는 가능성을 실천적으로 증명했다.
이후 융은 『이자벨라에 대한 비전(Visions: Notes of the Seminar Given in 1930–1934)』,
『심리학과 연금술』 등 다른 저작에서도 동양의 상징 체계와 정신 세계에 대한 해석을 이어갔다. 『티벳 사자의 서』는 그에게 있어 단순한 참고 문헌이 아닌, 그의 심리학을 확장시키는 하나의 ‘내적 사건’이라 볼 수 있다.
칼 융의 해석: 바르도를 심리학으로 풀다
칼 융은 『티벳 사자의 서』 속 ‘바르도’를 단순히 죽은 후 영혼이 머무는 중간 세계로 해석하지 않았다. 그는 바르도를 삶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의식의 전환 상태, 혹은 무의식과의 대면이 일어나는 심리적 공간으로 보았다.
다시 말해, 바르도는 죽은 자만의 영역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 역시 꿈, 명상, 심리적 혼란 속에서 반복적으로 진입하게 되는 ‘의식의 간극’이라는 것이다.
경전에 묘사된 환영들과 빛의 현상, 신들과 괴물들의 이미지는 융에게 있어 단지 종교적 상징이 아니라, 집단 무의식에서 솟아오르는 원형(archetype)의 표현이었다.
이 원형들은 융 심리학의 핵심 개념 중 하나로, 인간의 정신 속 깊은 구조에 자리 잡은 보편적 이미지와 경험의 패턴을 의미한다.
융은 『티벳 사자의 서』에 등장하는 다양한 바르도의 형상들이 개인의 내면 깊은 곳에서 솟아오른 상징들로, 인간이 자기 자신과 대면할 때 마주치는 심리적 진실이라고 보았다.
특히 융은 이 상징적 체험이 단지 무의식의 산물일 뿐 아니라, 자아의 성장과 자기 실현을 위한 필수적인 여정이라고 강조한다.
바르도는 삶의 위기 속에서 인간이 스스로를 통합하고 초월하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심리적 공간이기도 하다.
우리가 꿈속에서 미지의 존재를 마주하거나, 명상 중 낯선 감각에 휘말릴 때,
혹은 극심한 감정의 혼란 속에서 자신을 잃을 때 — 융은 이 모든 상황을 바르도적 체험으로 본다.
그는 이러한 상징들을 “의식의 지평 너머를 가리키는 이정표”로 여겼다.
즉, 『티벳 사자의 서』는 죽은 자를 위한 안내서인 동시에, 무의식의 바다를 항해하는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나침반이기도 했다.
융에게 이 책은 심리학을 넘어선, 영적 통합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지도였고, 그가 평생 추구했던 ‘자기(Self)’의 통합과도 맞닿아 있었다.
동양과 서양의 지혜가 만나는 지점
칼 융은 『티벳 사자의 서』를 단지 동양의 종교 문헌이 아니라, 심리학적·영적 여정을 담은 상징의 보고(寶庫)로 바라보았다. 그는 이 경전을 통해 다음과 같은 심리학적 메시지를 강조했다.
- 자아(Ego)와 자기(Self): 바르도에서 펼쳐지는 환영과의 대면은 자아가 무의식과 마주하며 자기(Self)로 향하는 과정을 상징한다. 이는 융의 ‘개성화 과정(Individuation)’과 본질적으로 같은 구조를 가진다.
- 개성화(Individuation): 영혼이 바르도의 각 단계를 통과하며 겪는 변형은 곧 인간이 무의식의 깊은 층을 인식하고, 자신의 진정한 중심(Self)과 만나려는 심리적 여정이다.
- 그림자(Shadow)와의 대면: 바르도에서 마주치는 무서운 형상과 혼란은, 인간이 억압한 그림자의 상징이다. 이를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것이 곧 자아의 성장으로 이어진다.
융은 이러한 통찰을 통해, 『티벳 사자의 서』가 죽은 자를 위한 안내서인 동시에,
살아 있는 자에게도 삶의 전환기에 필요한 ‘심리적 바르도’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렇게 보면 인간은 살아서도 여러 번 죽음을 맞이하는 셈이라고 나는 생각해본다.
칼 융의 심리학적 해설은 『티벳 사자의 서』를 통해 동양의 지혜와 서양의 심리학이 만나는 다리가 되었다.
융은 이 고대 경전이 단순한 종교적 믿음을 넘어, 인간 정신의 깊이를 설명하는 보편적 도구임을 강조했다.
그의 이러한 시각은 훗날 통합 심리학(Integral Psychology)과 초문화적 영성(Transcultural Spirituality)의 기틀이 되었다.
『티벳 사자의 서』, 지금 우리에게 — 현대인을 위한 메시지
『티벳 사자의 서』는 단지 죽음을 넘어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오히려 이 책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묻기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되묻는다.
칼 융이 그랬듯, 이 책을 읽는 우리는 삶 속의 ‘바르도’—즉, 전환기와 혼란의 순간들—를 경험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다.
- 삶과 죽음의 연속성 :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삶의 또 다른 얼굴이다.
이 통찰은 우리로 하여금 현재의 삶을 더욱 충실히 살아가게 한다. - 내면으로의 여정 : 바르도는 외부 세계가 아닌 우리 내면의 무의식 탐험이다.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용기 있는 여정. - 마음챙김과 현존 : 혼란 속에서도 지금 이 순간을 또렷이 인식하는 것,
그것이 『티벳 사자의 서』의 진짜 메시지다. - 두려움의 극복 : 죽음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삶에 대한 불안과 막연한 공포는 조금씩 사라진다.
🌌 당신의 바르도는 지금 어디쯤인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어쩌면 작은 바르도를 지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의욕이 꺼지고, 무기력하고, 길을 잃은 듯한 감각…
그건 무너지고 있는 게 아니라, 어쩌면, 다시 태어나기 위해 어둠을 통과하고 있는 중일 수도…
『티벳 사자의 서』는 말한다.
그 어둠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그 어둠 속엔 당신의 그림자가 있고, 그 그림자 안에는 더 깊고 선명한 당신의 ‘자기(Self)’가 숨어 있다고 말이다.
삶은 바르도 위를 걷는 여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나는 이 어두운 터널의 끝에서, 더 넓고 환한 또 다른 나를 마주하기를~
다음은 김소장의 또다른 칼융에 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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