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그 환경에 대한 반응과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는 빅터 프랭클의 말은 힘든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나에게 깊은 위로가 되어주었다.
빅터 프랭클의 생애 – 절망 속에서 ‘의미’를 창조한 인간
빅터 에밀 프랭클(Viktor Emil Frankl)은 1905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에서 태어났다. 유대계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철학과 인간 존재의 본질에 관심이 많았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벌써 ‘삶의 의미’에 대해 깊이 고민하며, 심리학이라는 세계에 문을 두드렸다. 17세에 지그문트 프로이트에게 자신의 에세이를 보낼 정도로 열정적이었고, 이 글은 프로이트의 추천으로 학술지에 실릴 만큼 인상 깊었다.
하지만 그는 곧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도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인간을 ‘본능’이나 ‘권력욕’으로만 설명하는 기존 심리이론은 그에게 너무 협소하게 다가왔다. 그는 그보다 더 깊은 차원, 인간의 ‘의미’에 대한 갈망과 자유의지를 주목하기 시작했고, 이는 훗날 ‘로고테라피(Logotherapy)’라는 독자적 심리치료 철학으로 발전하게 된다.
빈 대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한 그는 정신과 전문의가 되었고, 특히 자살 충동을 겪는 청소년 환자들을 돌보며 명성을 쌓았다. 당시만 해도 빈의 청소년 자살률은 매우 높았지만, 프랭클은 그들과의 상담에서 ‘삶의 의미’가 자살 예방에 결정적이라는 통찰을 얻게 된다. 이것은 그가 단순한 임상의가 아닌, 실존적 심리학자로 성장하는 결정적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이론보다 훨씬 더 잔혹한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점령하자, 유대인이었던 프랭클에게도 위기가 찾아온다. 당시 그는 미국 이민 비자를 받아 망명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노부모를 혼자 남겨둘 수 없어 이를 거절한다. 그리고 1942년, 그는 아내와 함께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강제 이송된다.
수용소에서의 삶은 인간의 존엄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옥 그 자체였다. 그의 아내, 부모, 형제는 모두 목숨을 잃었다. 본인도 하루하루가 생존을 향한 투쟁이었다. 그러나 이 절망의 심연 속에서조차 프랭클은 관찰자로 남는다. 인간이 어떤 환경에서도 ‘태도’를 선택할 수 있다는 가능성, 그리고 고통 속에서조차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신념을 그는 수용소 안에서 체득했다.
“인간은 모든 것을 빼앗길 수 있다. 단 하나,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자유만은 예외다.”
그의 이 말은 단지 철학이 아니라, 실제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나온 진실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기적처럼 살아남은 그는 다시 빈으로 돌아와 단 9일 만에 『죽음의 수용소에서(Man’s Search for Meaning)』를 써내려갔다. 이 책은 수용소의 체험과 로고테라피 이론을 함께 담은 그의 대표작이며,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독자에게 영향을 미쳤다. 2023년 기준 누적 판매는 1,600만 부를 넘었고, 타임지는 이 책을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책 10권” 중 하나로 선정했다.
이후 프랭클은 빈 대학교에서 25년간 신경과학 및 정신과 교수로 재직했고, 하버드, 스탠퍼드, 프린스턴, 피츠버그 등 세계 유수 대학에서 강연하며 전 세계에 로고테라피를 전파했다. 총 39권의 저서를 남겼고, 그의 사상은 심리학, 철학, 교육, 영성 분야에서 큰 영향을 미쳤다.
1997년,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단 한 번도 인간 존재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인간을 단지 ‘본능적 존재’가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스스로를 초월할 수 있는 존재,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존재로 바라보았다.
빅터 프랭클의 눈으로 본, 한 조각의 인간성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하루하루가 목숨을 건 버티기였다. 인간다움 같은 건 사치였고, 살아남는 법칙은 단순했다.
그것은 남보다 먼저 일어나고, 남보다 덜 맞고, 조금이라도 더 먹는 것이다. 감정은 오히려 독이 됐다. 누군가를 걱정하거나, 동정하거나, 사랑한다는 감정은 그날 생존 확률을 낮추는 일이기 때문이다.
빅터 프랭클은 어느 날, 한 장면을 잊지 못한다. 그날은 유난히 눈발이 거셌고, 기온은 뼛속까지 내려앉아 있었다. 바람은 살을 베듯이 차가웠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수감자들이 눈밭 위로 하나둘 쓰러지던 날.
프랭클은 감기로 고열에 시달리며, 겨우겨우 막사 안에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구석에 누워 있던 노인이 기침을 했다. 몸은 거의 굳어 있었고, 더는 움직일 힘조차 없어 보였다. 얼굴은 창백했고, 눈동자는 이미 멀어진 듯 공허해 보인다.
갑자기 그 옆에 있던 한 수감자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몇 시간 전, 식사 시간에 몰래 챙겨두었던 빵 한 조각!
그는 그것을 꺼내 노인의 손에 살며시 쥐여주며 말없이 자리로 돌아갔다.
한 줌도 안 되는 크기의 딱딱하고, 차가운 빵.
하지만 수용소 안에서는 그 한 조각이 누군가의 하루를 이어주는 생명줄이 되기도 한다.
아무도 그에게 묻지 않았고, 칭찬도, 말 한 마디도 없었다. 그냥 그렇게 지나갔다.
프랭클은 이 장면을 지켜보며, 뇌리를 칠 정도의 깨달음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그 수감자는 인간이 되기로 선택했다. 모든 것이 박탈된 상황에서도, 자신보다 더 약한 자를 위해 빵 한 조각을 나눌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더 이상 본능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자유였다.”
빵을 준 수감자는 며칠 뒤 세상을 떠났다. 그 사람은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줄여가며 누군가를 돕는 선택을 했고, 프랭클은 그가 죽은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승리한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 일화를 처음 읽었을 때, 가슴이 막막했다.
그 순간의 장면이, 마치 영화처럼 머릿속에서 그려졌기 때문이다.
춥고 어두운 막사, 병든 노인의 떨리는 손, 그 빵 한 조각이 가지는 무게…
내가 그 상황에 처해있더라면 나의 먹을것을 주었을까?
정말이지 그건 절대로 쉽지 않은 일이다.
삶의 의미는 철학책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그 빵 한 조각이, 모든 이론을 대신하고 있었다.
빅터 프랭클과 로고테라피의 메시지
로고테라피.
나는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치료’보다는 ‘삶’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이 개념은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이 20세기 중반, 인간 존재의 핵심을 꿰뚫는 통찰 끝에 만들어낸 심리치료법이다. 하지만 단순한 이론이나 상담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 왜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철학적인 여정이기도 하다.
로고스(Logos)는 그리스어로 ‘의미’를 뜻한다.
빅터 프랭클은 인간의 가장 깊은 동기가 쾌락(프로이트)이나 권력(아들러)이 아닌, 의미에 대한 갈망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 믿음은 책상 앞에서 탄생한 게 아니었다.
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목숨이 경계선 위를 오가는 나날들 속에서 그것을 직접 경험했다.
어떤 이는 모든 것을 빼앗기고도 살아남았고, 어떤 이는 모든 걸 가졌어도 무너졌다.
차이를 만든 건, 삶 속에서 발견한 ‘의미’였다.
로고테라피는 우리 삶의 의미를 찾는 세 가지 경로를 말한다.
첫째는 창조적 가치다.
일, 창작, 봉사… 우리가 세상에 무언가를 ‘남긴다’는 감각은 인간을 단단하게 만든다.
둘째는 경험적 가치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 음악 한 곡, 자연의 경이로움. 이런 ‘경험을 받는 행위’도 의미를 만든다.
그리고 프랭클이 가장 강조한 셋째는 태도적 가치, 즉 고통을 마주하는 우리의 ‘태도’다.
그는 수용소에서 이를 수없이 목격했다.
고통은 우리를 망가뜨릴 수도 있지만,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그 고통이 삶의 증거가 되기도 했다.
또한, 빅터 프랭클은 현대 사회를 ‘실존적 공허’라는 개념으로 정의했다.
삶은 분명 바쁘고, 스마트폰은 끊임없이 울리지만, 정작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묻지 않는다.
모두가 연결되어 있는 듯하지만, 그 안에서 자기 삶의 방향은 잃은 채 헤매고 있는 것이다.
우울함은 막연하며, 불안의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프랭클은 이런 상태를 ‘일요일 신경증(Sunday neurosis)’이라고 불렀다.
그는 일주일의 분주함이 끝난 후, 삶의 공허함을 자각하게 되면서 나타나는 우울감으로 설명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는 미뤄뒀던 질문,
나는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는가?
다들 한 번 씩은 해본 듯한 그 질문이 고개를 들 때, 사람들은 공허감에 휩싸이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삶에 의미가 없다면,
그 삶은 고통이 될 수 있다.
빅터 프랭클은 로고테라피를 통해, 우리가 고통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일상 속에서 실천 가능한 몇 가지 방법을 제시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역설적 의도’다.
예를 들어 발표 불안이 있는 사람에게, 오히려 더 떨려고 해보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처음엔 당황스럽지만, 이는 불안 자체와 싸우려는 태도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불안을 없애려 애쓰는 대신, 그 감정을 가볍게 조롱하듯 받아들이면 오히려 불안은 힘을 잃는다. 그렇게 우리는 불안과 거리를 두게 되고, 그 거리 속에서 자유가 생긴다.
또 하나의 접근법은 탈성찰(de-reflection)이다.
지나치게 자신에게 몰입할수록, 우리는 문제를 더 크게 느끼게 된다.
불면증 환자가 ‘반드시 잠들어야 해’라고 강박적으로 생각할수록 잠이 더 오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프랭클은 이런 상황에서 시선을 자신에게서 떼어내고, 삶의 의미로 옮겨가도록 안내한다.
즉, 문제 자체가 아니라, 그 문제를 바라보는 태도를 바꾸는 것, 그것이 로고테라피의 핵심이다.
그러나 프랭클이 말한 가장 본질적인 가르침은 따로 있다.
그는 인간이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존재라고 믿었다.
비극 속에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은 바로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환경의 노예가 아니다.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우리는 자신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그 자유,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인간에게 주어진 마지막이자 궁극의 자유였다.
이 철학은 오늘날 다양한 분야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심리치료뿐 아니라, 교육, 비즈니스, 리더십, 영성, 그리고 죽음과 마주하는 호스피스 현장에서도 로고테라피의 흔적은 깊게 남아 있다.
나는 특히 ‘마음챙김’이나 ‘자기돌봄’ 같은 현대 심리학 접근에서 프랭클의 그림자를 종종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철학이 나를 붙잡아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누구에게도 말 못 할 감정의 터널을 지나던 날은, 여지없이 프랭클의 한 문장을 떠올린다.
“우리는 단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될 것인지’를 선택하는 존재다.”
빅터 프랭클의 보석같은 어록들
여러분들이 지금 현재의 삶이 힘들다면, 빅터 프랭클이 남긴 글을 읽고 힘내길 바란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모든 것을 빼앗길 수 있다. 단 하나, 태도를 선택하는 자유만은 제외하고
Everything can be taken from a man but one thing: the last of the human freedoms – to choose one’s attitude in any given set of circumstances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발견할 때, 우리는 그 고통을 견딜 수 있다.
When we are no longer able to change a situation, we are challenged to change ourselves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인간의 주된 동기이다
Man’s search for meaning is the primary motivation in his life
인간에게 ‘왜’ 살아야 하는지가 있다면, 거의 모든 ‘어떻게’는 견딜 수 있다
He who has a why to live can bear almost any how
우리가 상황을 바꿀 수 없을 때, 우리는 스스로를 바꾸도록 도전받는다
When we are no longer able to change a situation, we are challenged to change ourselves
삶은 결코 의미가 없지 않다. 심지어 가장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의미가 있다
Life is never made unbearable by circumstances, but only by lack of meaning and purpose
궁극적으로 인간은 스스로 결정하는 존재이다. 그는 단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무엇이 될 것인지 결정한다
Ultimately, man should not ask what the meaning of his life is, but rather must recognize that it is he who is asked
삶이 당신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물어보라, 당신이 삶에 무엇을 기대하는지 묻지 말라
Don’t ask what you expect from life, ask what life expects from you
고통 자체는 의미가 없다. 고통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의미를 만든다
Suffering in and of itself is meaningless; we give our suffering meaning by the way in which we respond to it
두려움이 현실이 되는 것은 바로 그것을 두려워할 때이다
What you fear becomes reality precisely because you fear it
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처한 운명을 바꿀 수 없을 때, 자신을 바꿀 수 있는 능력에 있다
The greatness of a human being is essentially in his ability to change himself when he cannot change his fate
📚 빅터 프랭클 주요 저서 연도별 목록

(출처: 청아출판사)
김소장도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을 20여년전에 읽었지만, 이제 다시 봐야겠다. 아울러 빅터 프랭클의 ‘회상록’과 ‘의미를 향한 외침’도 꼭 읽고 싶은 책 목록 중 하나이다.
1946년: 『죽음의 수용소에서』 (Man’s Search for Meaning)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경험과 로고테라피의 기초를 담은 대표작
1946년: 『의사의 영혼 돌봄』 (The Doctor and the Soul)
로고테라피의 철학적 기반과 실천적 접근을 설명한 저서
1948년: 『무의식의 신』 (The Unconscious God)
심리치료와 종교의 관계를 탐구하며, 인간의 무의식 속 신념을 조명
1967년: 『심리치료와 실존주의』 (Psychotherapy and Existentialism)
로고테라피와 실존주의 심리학의 교차점을 다룬 논문 모음집
1969년: 『의미에의 의지』 (The Will to Meaning)
로고테라피의 응용과 인간의 의미 추구 본능을 심층 분석
1978년: 『의미를 향한 외침』 (The Unheard Cry for Meaning)
현대인의 공허함과 의미 상실을 다루며, 로고테라피의 현대적 적용을 제시
1995년: 『회상록』 (Recollections: An Autobiography)
빅터 프랭클의 자전적 이야기로, 그의 삶과 사상을 되돌아보는 회고록
1997년: 『궁극적 의미를 향한 인간의 탐색』 (Man’s Search for Ultimate Meaning)
『무의식의 신』의 확장판으로, 인간 존재의 궁극적 의미를 탐구
2020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예”라고 말하다』 (Yes to Life: In Spite of Everything)
빅터 프랭클의 강연을 엮은 책으로, 고통 속에서도 삶을 긍정하는 메시지를 전달